두 마리의 황소가 서로 뿔과 뿔을 맞대고 거친 숨을 내뿜는다. 한치의 물러섬도 없다.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도 숨을 죽인 채 주먹만 불끈 쥔다. 자기네 동네 소에게 보내는 무언의 응원이다. 이윽고 힘에 부친 상대방 소가 머리를 돌려 꽁무니를 뺀다. “와~” 터져나오는 함성.

그리 오래지 않은 예전에 동네마다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다. 소싸움이다. 소를 중요한 생산수단으로 여기던 전통사회에서 소싸움은 어느 지역에서나 늘 볼 수 있는 구경거리였다. 입으로 전해져 오기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이 땅에 농경문화가 정착한 시대에 목동들이 망중한을 즐기기 위한 즉흥적인 놀이로 시작해서 차차 그 규모가 확산돼 부락 단위로 번져 서로의 명예를 걸고, 가세(家勢) 또는 족세(族勢) 과시의 장으로 이용됐다.

하지만 두 마을 또는 여러 마을에서 그 마을을 대표하는 소를 끌고 나와 연례적으로 벌인 소싸움은 경상남도 일원과 경상북도 청도 지역 등 이른바 가야문화권에서만 전승됐다. 그중 추석놀이로 행해진 청도 소싸움은 일제강점기에 강제 폐지되면서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거친 기개를 내뿜는 한국 소끼리 싸움을 벌이고 이를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다 무슨 일을 일으킬지 두려워한 때문이다. 그렇게 한때 명맥이 끊긴 청도소싸움은 1970년대 중반부터 고유의 민속놀이로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의 기상을 엿보게 하는 문화인 ‘소싸움’의 명맥을 잇기 위해 견인차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한국우사회(www.koreabulls.com)다. 이곳의 수장 박성구 대표는 “우리의 전통 놀이문화 중 가장 역동적이고 정열적인 소싸움은 세계인이 열광하는 대표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한국우사회는 지난 2002년 제정된 소싸움진흥법에 힘입어 2006년 소싸움 전용 돔경기장을 건립하며,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이후 소싸움이 단순한 놀이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관광 엔터테인먼트로 알려지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청도소싸움 경기는 경마·경륜·경정에 이은 제4의 갬블산업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경마·경륜·경정이나 카지노보다 중독성이 약해 건전한 레저·스포츠 문화로 정착해 가면서 기존 갬블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박 대표는 “소싸움이 경마처럼 베팅의 대상인 것을 아는 분들이 많지 않다. 하지만 아주 재미있는 베팅 경기 중 하나”라며 “특히 유사업종과 달리 공정성 시비가 거의 없다. 사람이 개입되지 않는 소와 소의 대결로, 승부조작 가능성이 없는 투명한 경기가 소싸움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현재 청도소싸움 경기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각각 12경기씩 펼쳐진다. 이를 통해 지난해에만 약 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그동안 노력을 기울인 홍보효과를 서서히 보고 있다.

“청도소싸움 경기는 갬블 경기이지만 관광문화 또는 전통문화라는 인식이 강해 가족이 함께 공유하는 놀이문화의 장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어요. 단순한 예로 경마나 경륜 같은 유사업종 경기장은 주로 갬블러들이 입장합니다. 하지만 소싸움 경기장은 그렇지 않아요. 소싸움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경기장을 찾는 일반관광객이 속칭 ‘갬블러’보다 많습니다.”

실제로 한국우사회가 입장객을 분석한 결과도 가족·연인·친구 등 일반관광객 유형이 제일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3대가 함께 와서 서로 승리를 기원하는 소를 선택해 응원하는가 하면 유치원생이나 장애인들이 견학을 올 정도로 건전한 우리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박 대표는 “온 가족이 공유하는 문화의 장이자 갬블과 관광이 어우러진 유일한 사례가 청도소싸움”이라고 말했다.

소싸움은 전통 문화상품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시장개방 압력에 신음하는 우리 축산농가에 숨통을 틔워 줄 ‘비상구’ 역할도 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박 대표는 “한국우사회는 소싸움 경기의 수익금으로 싸움소 사육농가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등 축산산업 전반에 걸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며 “또한 싸움소 훈련시설 확충과 개발, 싸움소 도입비와 싸움소 품종개량 연구비도 마련하는 등 소싸움경기산업의 제반 환경을 개선하는 데도 힘쓰겠다”고 전했다.

한국 전통의 소싸움을 신한류 문화로 부각시키려는 노력도 계속된다. “우리의 전통 놀이문화 중 가장 다이내믹한 것이 소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국내 문화관광 상품으로 자리매김토록 하는 동시에 세계인 모두가 열광하는 한국의 대표 관광상품이 될 수 있도록 한국우사회가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자신에 찬 이야기다.

박 대표는 “동남아시아를 기점으로 소싸움 경기 영상을 해외에 송출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하기도 했다. 아시아 전역뿐 아니라 미주대륙으로도 송출 범위를 넓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 소싸움경기 콘텐츠를 널리 알리겠다는 각오와 함께….

두 마리의 싸움소가 빚어내는 감동의 드라마, 치열한 승부와 환희로 가득 찬 청도소싸움은 지난 2014년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선’에 들기도 했다. 청도소싸움이 축산산업 발전은 물론 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이바지, 한류 상품으로 국가 이미지 제고 등 ‘한국의 효자상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를 위해 청도소싸움의 경기시행자인 청도공영사업공사와 민간사업시행자인 한국우사회도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공정성을 확보하면서 다양한 재미를 곁들인 품격 높은 소싸움 레저문화를 만들어 국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축산발전에 이바지하겠습니다. 다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농림축산식품부·청도군·한국우사회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다양한 게임방식의 개발과 함께 외국에서도 소싸움을 즐길 수 있도록 온라인화도 서둘러야 합니다.”

박성구 대표를 비롯한 90여 한국우사회 식구들은 청도소싸움을 한국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소싸움은?

소싸움은 논농사를 짓는 지역의 전형적인 민속놀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 남부와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에서 성행한다. 원래는 신에게 제물로 바칠 소를 고르기 위해서 벌였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상남도 지방에서 성행하며 주로 한가윗날 벌인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싸움소를 따로 길렀고, 이들 싸움소끼리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마을 전체의 영예로 여겼다. 소싸움을 주관하는 이를 ‘도감’이라 불렀으며, 도감은 싸울 소의 나이와 체구 등을 따져 엇비슷한 것끼리 싸움을 붙였다.

싸움소들은 들치기·목치기·머리치기·밀치기·뿔걸이·연타·옆치기(배치기) 등 다양한 기술을 구사한다. 싸우다 무릎을 꿇거나 넘어지거나 뒤로 밀리거나 싸움을 피해 도망을 가면 지는 것으로 한다.